가인의 제물을 열납하지 않았다는 자기 인식의 준거가 여기에서 드러난다. “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냐?”(또는 ‘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냐?’)라는 반문은 마치 “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?”(창 3:11)고 했던 반문에 상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. 벗었음을 아는 방식이나 제물이 열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방식은 다 자기 결함의 폭로 형식이다. 벗었다는 사실 그리고 열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전해준 사실이 없다.
홈 » » 교회와신앙 » 목사(牧師)의 기원 (2)
가인의 제물을 열납하지 않았다는 자기 인식의 준거가 여기에서 드러난다. “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냐?”(또는 ‘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냐?’)라는 반문은 마치 “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?”(창 3:11)고 했던 반문에 상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. 벗었음을 아는 방식이나 제물이 열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방식은 다 자기 결함의 폭로 형식이다. 벗었다는 사실 그리고 열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전해준 사실이 없다.